편집의 정석

원인찡 0 26
프롤로그 : 악몽

지하철 너머로 석양이 퇴근을 서두르고 있었다. 
그 아래로 샐러리맨들이 연어때처럼 각자의 집을 향해 물결치고 있었다.
출판사 선후배 사이인 태수와 민수는 물길을 거스르듯 무리를 이탈해 술집으로 빠졌다.
2차로 들어선 지하 노래방은 도우미들 노래 소리로 후끈했다.
후배인 태수가 선배인 민수의 목에 팔을 두르며 잔을 들었다. 
“형, 오늘은 정말 둘 중에 하나는 죽는거야. 알았어?”
“네 부장님.”
“시발. 내가 둘이 있을 땐 말 높이지 말라고 했잖아!”
“네, 네 알겠습니다.”
“아 자꾸 그런다. 아 한 손으로 좀 따르라고. 몇 번 말해야 알아들어. 그러니까 형이 마흔이 넘도록 만년 과장이나 하고 있는 거야. 알았어?”
“네, 으, 응 태수야.”
태수가 민수의 손을 잡아 옆에 앉은 도우미의의 허벅지에 갖다대며 목소리를 높였다.
“비싼돈 들여서 부른 애들인데 허벅지도 좀 주무르고 해야지. 이럴려고 노래방 왔어?
“아니 네가 가자고 해서...”
“누가 가자고 했던, 영업하는 사람이 그래가지고 되겠어?”
“...미, 미안.”
“뭐가 미안한데?”
“아 그, 그게. 그러니까...”
“아 됐고, 나 화장실 갔다 올테니까 술이나 더 시켜.”
태수가 노래방을 빠져나가고, 뒤이어 태수의 파트너가 술을 시키려 방을 빠져나갔다.
“아무래도 아저씨가 형 같은데. 저 아저씨 아까부터 왜 저래요? 이상한 아저씨 아니에요?”
민수의 파트너가 오징어를 앂으며 태수도 같이 앂었다.
“태수 욕하지 마세요. 저래보여도 나 챙겨주고 술이라도 한 잔 사주는 건 회사에서 태수 뿐이에요.”
민수의 말에 파트너가 똥앂은 표정으로 오징어를 질겅질걸 앂었다. 그 사이 들어온 태수 파트너가 캔맥주를 테이블에 세팅하며 민수에게 말했다. 
“나가보셔야 되는거 아니에요? 아저씨 토하고 난리 났던데.”
“아이고 오늘따라 왜 그렇게 마셔가지고. 무슨 안 좋은 일이라고 있나.”
민수는 등이라도 두드려 줄 생각으로 급하게 화장실로 뛰어나갔다.
ㄱ 자 모양으로 꺽인 복도 안에서 들리는 태수의 전화소리에 급하게 민수의 발걸음이 멈췄다.
“네 대표님. 올해는 책임지고 민수 퇴사 시키겠습니다.”
우뚝 선 민수의 눈이 커졌다. 온 몸의 털 들이 곤두섰다.
“그 능력에 이정도 버텼으면 회사가 배려를 한 거죠. 그럼요. 저만 믿으십시오.”
민수의 발이 동상처럼 자리에서 굳었다.

“아아 취한다.”
태수가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서는데 도우미들이 외투를 걸치고 빠져나가고 있었다.
“야 너희들 어디가?”
“저 아저씨가 가라는데요.”
민수가 태수를 한 번 눈길을 주고는 파트너의 옷자락을 잡았다.
“뭐야? 누가 나가래. 야 너희들 가지마.”
태수의 파트너가 어떡하냐는 듯 민수를 주시했다.
시선을 받은 민수가 앞에 놓인 양주 잔을 쭉 들이켰다.
“웬 양주?”
태수가 도우미를 향해 소리쳤다.
“너희들이 시켰냐? 나 술 안 취했어 이년들아.”
“내가 시켰다. 태수야.”
“어라? 누가 너보고 술 시키래.”
태수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민수를 쏘아보았다.
“이거 놔요.”
도우미들이 태수의 손을 뿌리치며 나갔다.
“아 짜쯩나네. 그거 한 병에 얼만지 알아?”
“속은 괜찮냐 태수야. 오랜만에 형이 살 테니까. 조용히 한 잔 하자.”
민수가 다시 양주를 쭉 들이키고는 빈 양주잔을 딱-소리나게 탁자에 내려 놓았다.
“자 와서 한 잔 해.”
민수가 태수를 향해 술 병을 내밀며 끈적하게 물었다.   
“오늘 둘 중에 하나는 죽는거야 알았어?”
태수는 갑자기 달라진 민수의 태도에 술이 깨는 것 같았다.
십 수년 전 사회 초년생일 때 자신을 리드해준 그때의 자신감 넘치는 민수 같았다.
“팔 떨어진다. 빨리 앉어.”
“어, 알았어. 형.”
태수가 한잔 들이키고 병을 들어 민수에게 한 잔 건넸다.
민수가 태수에게 손을 휘저었다.
“야 한 손으로 따라. 한 손으로.”

그렇게 몇순배 폭탄주가 돌았을까. 민수가 탁자에 머리를 박은 채 중얼거렸다.
“형 진짜지? 내일 딴 소리 하는 거 아니다. 다음 달 말까지 정리하는 거다.” 
“야 형이 거짓말 하는거 봤냐? 그래도 애딸린 너보다는 홀몸인 내가 낫지.”
“...고마워 형.”
“고맙긴, 내가 고맙지.”
태수가 술을 들이키며 허공을 향해 물었다. 
“태수야 처음 입사 했을 때 기억 나냐?”
민수의 말에 태수는 골아 떨어졌는지 대답이 없었다.
민수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듯 말을 이었다.
“이 놈의 출판사 언제 망하는지 내기 했었는데, 그게 벌써 20년이다. 벌써 20년이야. 정말 열심히 뛰었는데...큭큭큭.”
뭐가 웃기는지 하늘을 향해 소리내어 웃는 민수의 눈가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

민수가 태수를 부축하며 노래방을 나왔다.
늦음 밤의 한기가 온 몸을 때렸다. 민수는 술이 깨는 것 같았다.
“택시-.”
민수는 태수를 택시를 태워 들여 보냈다.
“형도 어서 택시타고 들어가.”
“그래 나도 곧 잡을거야.”
택시가 떠나고 밤 거리에 홀로 남은 민수가 싸늘했다.
민수는 비틀비틀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급하게 가면 간당간당 마지막 버스를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태수에게는 택시를 타고 간다고 말했지만 곧 백수가 될 민수는 택시비가 아까웠다.
돈 만원이 뭐라고-민수는 실없이 웃었다.

--차 타기 전에
엄마와 아들간다 젊은 새댁
앞질러 가다가
마치 ‘가족’ 같았다.
가족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막차 안은 여러 사람들로 붐볐다.
-알콩달콩 이어폰을 나눠 듣는 젊은 커플
-아이와 영상통화를 하며 함박 웃는 샐러리맨
평범한 모습이었지만 민수는 일생토록 가지지 못한 평범함이었다. 
민수는 창가에 앉아 외면하듯 시선을 밖으로 던졌다.
한강을 지나는 버스 밖으로 야경이 찬란하게 펼쳐졌다.
평소였으면 그 빛나는 모습을 하나라도 더 담으려 어린아이처럼 눈을 반짝였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빛이 찬란할수록 자신은 더 어두워지는 것 같았다.
‘언제부터 잘못 되었을까?’
힘 없는 생각이 물에 젖은 솜처럼 머리를 꽉 채웠다.
‘이대로, 아무 곳에도 도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민수는 눈물이 질질 흐르는 눈을 닦을 생각도 없이 질끈 감았다.
순간, 끼이이익!
타이어가 찢어지고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

“이봐요. 정신 차려요.”
민수는 어깨를 흔드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아, 여기가 어디에요?”
“어디긴 버스 종점이지요.”
“아, 종점...네? 종점이요?! 지금 몇시에요?”
민수는 물어보면서도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찾았다.
“으아 10시다! 큰일났네. 지각이다!”
회사에서 부재중 전화 10통.
민수는 다급해졌다. 어제 만취해서 종점까지 다다른 모양이었다.
‘아 맞다. 나 담달이면 짤리지...’
호들갑을 떨던 민수가 이내 마음을 가다듬었다. 
“어 그런데 핸드폰 바뀐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내 핸드폰이 폴더폰이었나? 이거 10년 전에 쓰던 건데.”
핸드폰을 돌려보던 민수의 시선이 그 밑의 배로 향했다.
“어 배가 왜 이렇게 홀쪽해? 팔에 이거 근육이야?”
뭔가 의아함을 느낀 민수가 핸드폰을 들어 검은 창으로 이리저리 얼굴을 비춰봤다.
민수는 하마터면 핸드폰을 놓칠뻔했다.
--버스 창을 본다
40대의 아저씨였던 민수의 얼굴이 갸름한 20대의 민수의 얼굴이 비춰졌다. 
민수가 놀라 주위를 둘러봤다.
몇 번 술에 쩔여 와 봤기에 종점을 알고 있는 민수에게 그 모습은 15년 전 개발되기 전의 그 모습이었다.
“아, 아저씨. 지금이 몇 년이에요?”
“몇 년이냐고? 아 이사람 술이 덜 깼나.”
“몇년이에요?”
민수가 미친놈처럼 아저씨에게 물었다.
“이 놈이 미쳤나. 2001년이지.”
“우와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민수가 아저씨를 얼싸 안았다.“
‘그게 꿈이었나?’
민수가 미친놈처럼 버스 종점을 뛰어 다녔다. 
‘우와 꿈이었어. 악몽이었어!’
민수는 곧바로 현실에 순응했다.
곧이어 띵동- 들어온 문자에 민수가 넥타이가 휘날리도록 뛰었다.

-김민수 씨 첫날부터 지각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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