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의 이름

LISLIS 20 266
*필력이 좋지 않은 점 양해 부탁드려요^^

"뭐 하고 있나!"

할머니의 노성이 귓가에 쟁쟁히 울린다. 싸늘하게 식은 분위기는 밖의 계절처럼 춥지만 곳곳에서 지글거리는 냄새만으로도 행복한 음식들은 따끈한 온기를 품고 있었다. 나는 결코 가질 수 없는 따뜻한 온기. 슬쩍 친척들의 얼굴을 살펴보니 엄마와 고모들은 어서 전이나 부치라는 듯 눈치를 주고 있다. 나는 할머니와 정면으로 눈을 마주치며 또박또박 말했다.

"할머니, 저 고 3이에요. 낼모레가 수능인 고 3이요. 다음 명절 때는 거들었지만, 이번 추석에는 정말 중요한 시험이 남아있어요. 그리고 저 지금 몸도 너무 안 좋아요. 이번 명절만 빠질게요."

할머니는 인상을 팍 구기며 소리를 지르셨다.

"니는 지금 니 고모랑 느이 엄마가 전 부치고 있는 거 안보이나! 니도 손이 있으면 거들어야지, 여자애가 이런 날 안 쓰이면 언제 쓰이겠나! 그까짓 공부, 인생 살다 보면 다 필요 없다. 여자애는 집에서 바깥양반들 챙겨주기만 하면 되는기라. 빨리 손 거들어라."

'쓰인다고요? 그럼 저는 물건이게요? 저기 저 놀고 있는 수능 끝난 사촌오빠들은 뭔데요? 왜 여자만 다 일해야 되는건데요? 저 중요한 시기라고요.'
나는 터져 나오려는 대답을 겨우 억누르고 담담히 대답했다. 속에서 천불이 나는 듯 했다.

"네."

고모들의 표정이 한시름 덜었다는 듯 하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누나, 내가 뭐 좀 도와줄까?"

평소에 자주 투닥거리던 내 남동생은 할머니 눈치를 보며 묻는다. 아마 누나만 일 시키는 것이 마음에 걸렸나보지. 어린아이도 아는 것을, 어른들은 왜 모를까.

"지후야, 남자는 부엌에 들어오는 거 아니다. 자, 이거 먹고 어여 가거라. 우리 예쁜 강아지."

동생이 좋아하는 동태전을 손에 쥐여주며 엉덩이를 두들기는 할머니. 한두 번 겪은 것도 아니지만 면역이 되지 않는다. 아무래도 내 감정선은 고장났나보다. 나는 삐져나오려는 눈물을 누르고는 앉아서 전을 부치려 앞치마를 찾아 허리에 질끈 묶었다.

"빨리 안하나. 이거 언제 다 부칠라꼬."

내게 신경질을 부리시는 할머니. 엄마는 내 시선을 피한다. 자꾸만 감겨오는 눈을 부릅뜨며, 뜨거워진 손을 조금씩 식혀가며 한 소쿠리가 가득 찰 때까지 전을 부쳤다. 사촌오빠가 TV를 보다 배가 고팠는지 내게 다가와 말한다. 아니, 명령한다.

"야. 동그랑땡 하나만 부쳐봐."

어이없어. 지가 부쳐먹든지. 내가 이 집 식모야? 여기 20개 넘게 있구만.

"여기 한가득 부쳐놨잖아. 집어먹어."

퉁명스러운 어조로 투덜거리듯 말하자 할머니는 인상을 찌푸리며 혀를 쯧쯧 찬다.

"저게, 지 하늘같은 오빠한테..."

저 멍청이가 하늘이면, 난 우주다. 내가 재보다 성적도 좋은데. 내가 재보다 노력도 더 많이 했는데.

"아, 방금 부쳐진게 더 맛있잖아. 잔말 말고 빨리 하나 부쳐봐."

짜증을 내며 말하는 사촌오빠. 나는 어쩔 수 없이 동그랑땡 단 하나를 위해 계란물을 다시 풀어 부친다. 내가 부치고 있으려니 사촌오빠가 재촉한다.

"야. 나 진짜 배고프다고. 언제 다 하는데. 빨리 좀 해봐."

그만 좀 징징거려. 나는 저 소리가 듣기 싫어 성급히 전을 뒤집었다.

"앗!"

서두르다 새끼 손가락에 작은 화상을 입었다. 작은 물집이 물방울이 맺힌 듯 살짝 부풀어올랐다. 그러자 들리는 소리.

"쟈는 저거 하나 제대로 못해서 뭐 해먹고 살낀지 모르겠다. 허구한 날 사고만 치고 댕기고, 지 오빠한테 바락바락 대들기나 하고 말이다.""

하. 제 앞가림은 제가 알아서 해요. 전교 3등이라고요. 이 거지같은 집에서 나가고 싶어서, 잠도 안자며 얻은 내 노력의 대가를 여자라는 이유로 무시한다. 내가 어느 정도의 성적인지도 모를걸? 짜증나. 이 시간에 책이라도 한 자 더 봐야하는데. 나는  얼른 화장실에 가 찬물을 크게 틀어놓고 손을 식힌다. 뜨거운 물방울이 뚝,뚝, 수도꼭지의 손잡이 위로 떨어진다. 아아, 명정이 너무 싫어. 왜 이리 긴걸까. 나는 물을 끄고 나와 TV를 보며 낄낄대고 있는 아빠에게 간다. 주위의 친척들이 TV가 안 보이는지 저리 가라는 듯 손을 휘휘 내젓는다. 말하기도 귀찮다는 것이겠지.

"나 도저히 못해먹겠으니까, 알아서 전 부치고 잘들 해보던가. 어떻게 딸이 수능을 앞두고 있는데 이럴수가 있어? 맨날 명절때마다 이렇게 부려먹으면 좋냐고!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서는. 하다못해 청소라도 하던가! 내 인생 망치면 아빠가 책임질거야?"

그러자 들려오는 친척들의 질타.

"쟈...쟈가 미쳤나. 어디 지 아비한테!"

"야. 니 미쳤냐? 왜 소리지르고 지x이야!"

"너 고생하다 명절에서야 겨우 쉬는 느이 아부지한테 그러는 거 아니다."

"지 애비한테 대들고 있어, 버릇없게. 싹수가 노랗다,노래. 이래서 딸은 키워봤자 소용 없다니깐. 아들이 최고지."

나는 가방을 들고 집 밖으로 나섰다. 집이나 가야지. 아무도 없는 집에서의 휴식은 정말 달콤할거야. 여기가 서울이라 다행이지, 부산이나 경주처럼 저 아랫지방이었어봐. 표가 없어서 집에 못 갔을지도 몰라. 나는 한시간이나 서있다가 겨우 자리에 앉았다. 졸려 죽겠네. 스마트폰을 보니 충혈되다 못해 아예 흰자가 붉게 변한 끔찍한 내 눈이 보인다. 징그러워. 이 와중에도 휴대폰은 계속 발광을 한다. 화면에 스쳐가는 엄마, 아빠, 고모, 사촌오빠, 할머니, 할아버지... 많은 친척들의 이름들.

"존x 거지같네."

갑작스레 튀어나온 욕에 내 옆에 있던 사람이 움찔하는게 느껴진다. 하, 이젠 상관없어. 이게 대한민국이다. 양성평등을 외치는, 아-주 정의로운 대한민국. 개나 줘버리라지. 이게 현실이야. 전 부치는 남자를 상상해본 적이 있어? 지금 상상해봐. 어색하지? 그게 바로 편견이자 양성평등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증거야. 명절 때 같이 요리하고 일하는 남자가 몇이나 될 것 같아?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비슷한걸. 나는 눈을 감고 가녀린 새의 날개처럼 떨리는 마음을 꼭 붙잡았다.

*
"띠로리-"

익숙한 벨소리. 나는 가방에서 옷가지들을 꺼내고 문제집들을 우겨넣는다. 어깨에 짊어진 가방이 무겁다. 하지만 아무리 가방이 무겁다 한들, 작금의 현실보다 무거울까? 서러울까?  어릴 적에는 주변의 아이들을 부러워한 적이 있다. 매일이 봄만 같은, 투닥거리는 와중에도 서로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화목하고 따스한 가정. 그에 반해 나에게만 매서운 나의 집. 겨울의 아름다운 경관의 이면에는 많은 생물이 얼어죽듯 화목한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나는 죽어야만 했었다. 아니, 한다. 온 몸이 지쳐간다. 가족이 없으면 이리도 편한 것이 집인것을, 단지 그 안에 몇 사람 더 있다고 그렇게 바뀐다니. 왠지 모를 공허함이 느껴진다. 이질적인 집을 나와 편안한 독서실로 향했다. 입실 버튼을 누르고 자리에 앉기 무섭게, 아저씨가 내 어깨를 조심스레 톡톡 건드리며 속삭인다.

"저기, 학생. 어머니가 전화오셔서..."

아, 문자. 입실 버튼을 누르면 엄마의 휴대폰으로 문자가 가는 것을 잊었다. 밖으로 나와 전화를 받자마자 귀가 찡 얼을정도로 큰 노호성이 터진다.

"야, 이 가시나야! 니 미쳤나. 빨리 들와서 안 거드나!"

역시 우리 할머니. 대-단하신 분이지. 나는 속으로는 쌍욕을 날리면서도 겉으로는 공손히 대답했다.

"지금 인천이에요. 저희 엄마 휴대폰으로 문자가 갔을거에요. 저 말씀드렸다시피 더이상은 명절에 못 거들겠고요, 이제 안 뵐려구요. 건강하세요."

흥. 내가 다시는 가나 봐라. 내가 노숙을 하더라도 집을 나간다. 매번 반복되는 결심. 하지만 이뤄지지 않는, 소망처럼 아득히 멀기만 한 결심. 나는 언제쯤 이 집을 나갈 수 있을까. 매번 명절마다 반복되는 일. 열심히 공부를 해야하는데, 정말 열심히 해야되는데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심장이 크게 쿵,쿵 박동한다. 언제나 그랬듯, 해가 지면 시작되는 심장의 박동과 깨질듯한 두통. 빙글빙글 미쳐돌아가는 알파벳과 수학 기호들. 온 몸의 세포들이 망아지마냥 날뛰는 듯 하다. 몸살이라도 걸렸나. 나른해. 눈꺼풀에 10kg짜리 모래주머니라도 올린 듯 자꾸만 감긴다. ...딱 30분만, 30분만 자자. 나는 휴대폰의 알람을 맞춰 후드티의 주머니에 넣었다. 책상에 엎드리자 기다렸다는 듯 어둠의 천이 부드럽고 달콤하게 나를 감싼다. 포근해.

가끔씩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사라진다면 내 주위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사람들은 그걸 알고싶어 내세를 믿는지도 모른다. 정말 내 편이 누구인지, 아니 정확히는 누구였는지 알아보는 시간. 끔찍한 심판의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그런 시간. 나는 어이없게도, 수능을 앞둔 고 3 어느 날, 겨울의 옷깃이 바닥에 스쳐간 그 시간에 과로사하였다.

Comments

민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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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L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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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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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L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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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
재밋ㅇ어영
LISLIS
정말 감사합니다 ♡
A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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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리리
재미있네요
jis1627
재밌어용
플립미조
재밌어요! 그나저나 할머니...너무 하시네요ㅠㅠ 주인공이 불쌍해요..
미니기12
재밌네요
태세문단세
재미있어요
창섭
신선해요
Jsgs
재미있네요
리치몬드
ㅋㅋㅋ신선하네요
리치몬드
qqwweer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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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린93
신선하고 재미있네요
BluePlanet
재미있었습니다~